"이우환 그림, 진품이야 위작이야?" — 법정에서 벌어진 감정 기관들의 설전
2026.04.22 | 법조·문화 | #이우환 #미술품감정 #청탁금지법 #법조인사이드
📌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4월 17일, 서울고법 302호 법정에서 꽤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이우환 화백의 작품 '점으로부터 No.800298'을 두고, 국내 두 감정 기관이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한국화랑협회 측은 "캔버스를 고정한 못에는 녹이 슬었는데, 캔버스 자체는 이질적으로 깨끗하다. 위작의 증거"라고 주장했고,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측은 "서명의 채도와 캔버스의 연대감을 보면 진품이 맞다"고 맞섰다.
단순한 미술 분쟁이 아니다. 이 그림은 김상민 전 부장검사가 김건희 여사 측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는 작품이다. 100만 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가 인정될 경우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 판단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어, 재판의 향방을 가를 핵심 쟁점이 됐다.
📌 왜 작가 본인을 부르지 않았나
가장 궁금한 점이 바로 이거다. "작가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냐?"
법조계의 설명은 이렇다. 2016년 이우환 화백 대규모 위작 사건 당시, 화백 본인은 경찰서에 직접 나타나 "13점 모두 내 작품이다. 작가는 자기 그림을 보면 금방 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기자회견까지 열어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인위적인 노후화 흔적 발견), 위조 관련자들의 신빙성 있는 진술, 그리고 대금 거래 기록 등 객관적 증거들이 더 설득력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결국 "내가 그렸다"는 작가의 말보다 '물리적·과학적 증거'가 더 강한 법정에서, 이우환 화백의 증언은 처음부터 실효성이 제한적이었던 셈이다. 현재 화백이 90세 고령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 진짜 문제는 감정 시스템의 부재
이 사건이 씁쓸한 이유는 따로 있다. 두 감정 기관이 같은 그림을 보고 정반대의 결론을 냈다는 것 자체가 한국 미술품 감정 시스템의 구조적 허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감정 기구였던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은 2018년 문을 닫았다. 그 이후 화랑업계 중심 조직과 학예사·큐레이터 중심 조직이 각자 감정을 맡고 있는데, 이해관계나 구성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과거 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건도 같은 문제였다. 작가 본인은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전문가와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미술계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 개인적인 생각
솔직히 이 기사를 읽으면서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하나는 법원의 태도에 대한 묘한 안도감이다. "작가가 진품이라 했으니 진품이다"라는 논리가 통한다면, 오히려 위작 유통의 빌미가 될 수 있다. 2016년 사건이 그 증거였다. 법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증거를 따진다는 원칙, 나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감정 시스템에 대한 답답함이다. 공신력 있는 단일 국가 감정 기관 하나 없이, 각자 민간 기관들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놓는 상황이라면, 결국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겠나. 미술품을 사고 파는 일반 시민들, 그리고 억울하게 위작 시비에 휘말리는 작가들이다.
'감정 이력 관리제'나 국가 차원의 미술품 감정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술 시장의 신뢰는 결국 감정의 신뢰에서 출발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사건이 단순한 미술 분쟁이 아니라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와 직결된다는 점이 묘하게 씁쓸하다. 그림 한 점의 '진위'가 정치적 사건의 명운을 가르는 상황, 예술이 정치의 볼모가 된 것 같아 예술가로서는 참으로 불편한 그림이다.